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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生)에서 본 소셜 네트워크

-(주)사이람 홍순만 공동대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기에 집단에 소속된다. 그리고 소속감을 확인받기 위해 주위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그 과정에서 자아가 숙성된다. 사회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 출발한 소속감은, 향우회, 동문회 그리고 직장(職場)을 통해 확대된다. 직장 중에서도 회사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몸담는 곳이다. 소속감을 ‘존재의 끈’이라고 한다면, 회사는 인생의 2/3 이상을 보내는 장소이기에, 다양한 존재의 끈이 형성되는 곳이기도 하다. 

    



웹툰 미생, 윤태호 (출처_위즈덤하우스)


         끈 만드는 사람들, 끈 잡으려는 사람들, 끈 확인하는 사람들 그리고 끈 꼬는 사람들. 

         그 끈들에 의해 엮인 회사의 구조적 모습들. 

         그 구조에서 작동하는 개개인의 정열과, 구조의 일부로 기생하는 비리의 끈들. 




  웹툰 미생은 대단했다. 드라마 미생의 반향에, 늦게사 접한 원작 웹툰인데, 위의 내용들이 어찌나 절실하게 묘사되었는지, 나 역시 숱한 독자들과 같은 감정이입의 감동을 받았다. 

더욱더 놀란 것은, 소셜네트워크의 핵심 측면들이 만화에 녹여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빅데이터와 소셜네트워크 분석 분야에 종사하는 직장인인지라,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저자 윤태호 씨의 탁월성을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그 웹툰에 녹여진 관련 요소를 애써 끄집어내어, 소셜네트워크분석(SNA) 관점에서 들여다보기로 했다.      









  국내 무역상사(원 인터내셔널)의 요르단 사업파트너(ICB 컴퍼니)가 중고차 사업에서 너무 많은 이익을 가져간 것에 의문을 품은 미생의 오 과장. 그에 의해 공모범죄가 파헤쳐진다. 

공모 체인은 <ICB컴퍼니>-<한국 내 협력사>-<원 엔지니어링>. 법인등기 상에서 무함마드 인디라, 제임스 박과 같은 외국식 이름으로 분칠되었지만, 모두 원 인터내셔널 사내 직원이 친인척과 공모해 만든 업체였다.  

우리의 ‘장그래’가, 사업파트너 업체 임원진 명단에 유독 박 씨가 많은 점에 착안하여 직관적으로 발견한 공모의 고리인데, SNA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 회사 공급망(SCM)에 속해 있는 여러 회사들의 인적 구성원들 내역을, 자사 임직원 DB와 연계하여 네트워크 분석한 것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만화 미생에서의 공모 연결고리는 3단계여서 우리 장그래의 직관이 작동했지만, 실제로는 공급망이 너무나 많고 복잡하기에, 테러리스트 네트워크 패턴 파악 등에서 응용되는 SNA의 기법이 활용해야 할 것이다.        










  능력 있는 어느 전무의 퇴진은,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우리의 장그래가 중국 지사로 건 전화 한 통이 일파만파 된 결과인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 모를 전무님의 판단으로 ‘절’을 받아야 하는 우리 회사가 ‘인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군요... 제가 맞습니까?”


  장그래의 그 말은 씨알이 되어, 중국지사 직원인 석 대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관행으로 여겨졌던 일이, 문제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직원은 윗선에 보고해버린다. ‘불안’이 전파의 촉매제가 된 것이다. 

씨알이 소셜네트워크 상에서 한 단계 전이되자, 문건으로 작성되는 변형(Transformation) 과정을 거치게 되고, 이후 그 문건은 공식 루트를 통해 소셜네트워크 상의 다음 단계로 증폭된다. 일단 수면 위로 올라온 변형된 씨알은 이후 일파만파를 형성했다. 결국 사장 주재 경영회의까지 올라온 중국 사업관련 ‘문서’는 전무의 문책성 인사로 귀결된다. 

만화 미생에서 전무의 독백이 나온다. “‘무엇 때문인지 모를’ 그 지점이 해소되지 않아 여기까지 오게 된 거구만... ” 


  SNA의 관점에서 볼 때 장그래의 말이 씨알로 작용한 지점, 중국지사의 석대리가 바로 매개 중심성을 형성한 곳이고, ‘무엇 때문인지 모를’ 그 무엇은 바로 소셜네트워크 상에서의 연결 중심성 인자였던 셈이다.   




  소셜네트워크분석은 개인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계량화, 가시화’ 하는 기법으로, 1920년대부터 발달되어온 계량사회학(Sociometry)의 발전된 기법이다. 1894년 남아공에 진출한 영국회사들의 중역진들이, 실상은 겹쳤음을 묘사하려는 원시적 시도도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학문분야에서 연구된 곳은 미국에서였다. 

인간의 정신병리적 문제(Psychiatry)를 프로이트식의 ‘개인특질’에서 찾기보다 ‘인간관계’ 속에서 찾으려는 심리학 분야와, 미국 사회계층을 형성하는 혈연적 집단을 파악하려는 인류학적 시도가 맞물리며 시작된 것이다. 그것이 하버드대학교 비즈니스스쿨에서 기업(Western Electric Corporation, Bell 자회사)의 생산성 향상 연구에 응용됨으로써 본격화 되었다. 근로자들의 심리적 특성이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대한 연구였다. 기업 내에 공식적 위계 구조와는 별도로, 비공식적인 사회적 유대(social bonds)가 생산성 향상에 관련되어 있음을 이때 주목하게 된다. 



  미생에서 나타난 기업 내의 다양한 끈들, 그 끈들이 엮어내는 공식적 비공식적 구조. 그리고 그 구조가 뿜어내는 생산성과 그 구조에 내재된 은밀한 부정의 연결고리들을 파악하려는 것이, 바로 100여 년 이상 발달되어온 소셜네트워크분석 기법의 원초적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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